💌부녀자들 in 학교 (2)

2021. 3. 24.

💌부녀자들 in 학교 (2)

in 학교

이번 부녀자들을 시작하기에 앞서...

발송 작업 준비 중 작은 차질이 생겨 아홉 시가 아니라 열한 시에 메일을 발송하게 되었습니다.

부녀자들을 기다려 주시는 구독자분들께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이런 일이 다시 없도록 주의하겠습니다.

지난 한 주 동안 잘 지내셨나요? 이제는 봄이 완전히 찾아오나 싶었는데요.

요며칠 갑자기 기온이 내려가 본가로 보냈던 겨울옷과 이불이 그리운 요즘입니다.

이번 호에는 지난 호에 이어서 '학교'를 주제로 한 글 두 편을 엮었습니다.

잠깐 학교 생활을 미뤄두고 직장을 다니고 있는 저에게 '학교'는 그리운, 돌아가고 싶은 공간인데요.

지금 학교에 다니는 분들, 이미 학교를 졸업하신 분들, 새로운 학교에 적응하는 분들 모두 응원하는 마음으로 오늘의 인사를 마무리하겠습니다. 🙌

아참, 부녀자들 인스타그램 계정이 있다는 사실 알고 계신가요?

매주 발송되는 레터 소식과 더불어 주제 공모, 사연 모집 등 다양한 이벤트를 인스타그램을 통해 진행할 예정이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여기를 클릭하시면 부녀자들 인스타그램으로 이동할 수 있어요.

💬 TODAYS'S PREVIEW

하나, 하이바의 <스피릿은 제법 장인급>

: 내 점핑이 너에게 닿기를

"고등학교 입학과 함께 시작된 진한 짝사랑. 선배, 보고 있어요...?"

둘, 까마귀의 <시네마리아>

: 루도비코 갱생 프로그램

" 사실 저는 대학교 5학년이에요."

하이바 💨 의 <스피릿만큼은 제법 장인급> : 내 점핑이 너에게 닿기를

바야흐로 봄입니다. 봄이라는 계절은 매년 돌아오는 것인데도 왜 껴입던 패딩을 벗고, 나뭇가지에 새순이 돋아나는 것을 보고, 카페에 슬금슬금 울려 퍼지는 벚꽃 엔딩을 들을 때마다 설레는 걸까요. 지금은 한 회사에서 기간제 인턴으로 일을 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인생을 학생이라는 신분으로 살아온 저에게 봄은 새학기를 의미하는 계절이기도 합니다.

제 기억 속에 있는 수많은 첫 학기 중에서도 단연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기억은 열일곱 살 때의 것입니다. ‘애살’ 있는 같은 과 친구들은 1반 2반 할 거 없이 섞여서 떠들다가도 수업 시간이 되면 눈에 불을 켜고 선생님이 하는 말을 빼곡히 공책에 적었습니다. 교실 안에서 묘하게 느껴지던 긴장감과 경쟁의식은 동아리 모집 시기에 확연히 드러났습니다. 그때 학교에는 ‘우선 선발 동아리’ 라는 것이 존재했습니다. 개교 이래로 지금까지 역사를 이어오고 없으며, 명문대에 합격한 선배들이 대거 포진되어 있고, 선생님들도 알아주는 (그렇게 홍보되는) 동아리들이었죠.

그때 저는 우선 선발 동아리 가입을 아주 간절히 원했었는데요. 편집부장 선배에게 반했었기 때문입니다. 큰 키와 마른 몸, 날카로운 인상을 가지고 있었던 선배는 성큼성큼 저희 반으로 들어왔습니다. 당당한 태도와 중저음의 목소리, 그리고 유려한 말솜씨는 단숨에 제 마음을 사로잡았어요. 선배는 아직 편집부 신청자가 두 명밖에 없다는 점을 강조하며 모두를 혹하게 만드는 마케팅 기법을 사용하는 치밀함까지 보였습니다.

동아리 면접 장소에서 선배의 얼굴을 다시 보니 심장이 터질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결심했습니다. 어떻게든 편집부가 돼서 선배와 가까이 지내야겠다. 나, 선배 없는 인생 살 수 없을 것 같아. 하고요. 본인을 어필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주겠다는 선배의 말에 비장하게 교복 넥타이를 풀었습니다. 그리고 이마에 둘렀습니다. 반주 없이 크레용팝의 <빠빠빠>를 부르며 열심히 점핑을 했습니다. 제 생에 가장 쪽팔린 순간 중 하나였습니다. <빠빠빠>의 점핑 안무를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안무 사진 몇 개를 소개해 드릴게요.

저의 점핑이 선배들의 마음에 들어서였을까요? 저는 무려 10대 1에 달하는 경쟁률을 뚫고 편집부에 합격했습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선배와 저의 거리도 좁혀지는 듯… 했으나 3학년 선배들은 입시 준비 때문에 동아리 시간에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편집부 가입 후 알게 됐습니다. 짝사랑은 계속되어 선배가 기숙사에서 나오는 시간에 맞춰 선배를 뒤따라 등교하고, 3학년 자습실 앞에서 괜히 얼쩡거렸습니다. 그때의 저는 숫기가 없어도 너무 없어 선배와 얼굴이 마주치면 인사도 안 하고 후다닥 복도 끝으로 도망쳤어요.

학교 생활이 어느 정도 익숙해졌을 때, 선배가 원하는 대학에 합격했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여전히 쭈구리였던 저는 선배가 학교 강당에서 장학금과 졸업장을 받을 때까지도 축하의 말조차 건네지 못했어요.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꽤 오래된 지금도 가끔 선배 생각이 나곤 합니다. 이번 봄에도 선배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팔로우하지 못하겠는 걸 보면 제 사랑의 용기는 이마에 넥타이를 두르고 힘차게 점핑할 때 다 써버렸나 봐요. 선배에게 웃으며 ‘저 그때 선배 진짜 좋아했었잖아요’ 라고 말할 수 있는 날이 오긴 올까요? 그때는 저도 선배만큼 멋있는 사람이 돼 있었으면 좋겠다고 막연하게 바라 봅니다.

여러분은 학교에 다니며 가슴 절절한 짝사랑을 경험해 보신 적 있으신가요? 짝사랑 상대 앞에서 바보같은 행동을 해 흑역사를 만들어 본 적은요? 이번 호의 맨 아래에 [학교와 관련된 내 흑역사 공유하기] 버튼을 클릭해 저 하이바에게 공유해 주세요. 고등학교 1학년, 강렬하지만 싱거웠던 제 짝사랑을 상기시켜 주는 크레용팝의 <빠빠빠> 뮤직비디오의 링크를 첨부하며 오늘의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다같이 One! (빠빠빠빠 빠빠빠빠)

<시네마리아> _ 까마귀 🐚

루도비코 갱생 프로그램

건대역 극장에 갔다. 비가 많이 오는 날이었다. 막 상영 중이던 벌새를 보기로 했다. 벌새를 보는 내내 영화가 얼른 끝나기를, 또 끝나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다. 끝을 보고 싶지 않을 정도로 재미있었지만, 담배 생각이 간절했기 때문이다. 영화가 끝나자마자 뛰쳐나가 담배에 불을 붙였다. 어느 누아르 영화를 봤을 때보다 맛있게 느껴졌다. 담배를 피며 내 학창 시절에 대해 생각했다. 내 곁에는 힘들 때 손가락을 보라던 한문 선생님도, 푸석한 남자친구도 존재하지 않았다.

학교에 대해서 별로 할 말이 없다. 한 인터뷰에서 학교 관련 질문을 받은 김보라 감독이 말했다. 나도 그렇다.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그리고 여전히 학교에 남아 있지만 할 말은 없다. 초등학교 때 한 달간 등교 거부를 한 적이 있다. 선생님의 학대를 기록한 수첩을 어머니가 발견했기 때문이다. 학교 밖 세상을 맛본 후로 학교에 재미를 잃었다. 한 달 후에 학교로 돌아갔을 때는 이전과 모든 게 달라진 기분이었다. 나는 이곳에 소속되지 않는다는 느낌이 반복적으로 들었다. 24살이 된 아직까지 학교에 소속감을 느끼지 못한다.

봉준호도 연세대를 나오고 박찬욱도 서강대를 나왔는데 너도 계속 학교에 다녀야지. 봉준호랑 박찬욱 때문에 나는 12년 동안 눈물을 흘렸다. 선생님들도 학교에 대한 삐딱한 내 생각을 눈치챈 건지 나를 바로 잡기 위해 애썼다. 선생님들의 노력이 무색하게도 고등학교 시절 내 별명은 ‘야자실에서 멸종한 생물’이었다. 야자 100번 중의 85번을 튀었다. 15번 참석한 야자 시간에는 영화를 봤다. 스탠리 큐브릭의 시계태엽 오렌지를 보다가 들켜서 반성문을 적었던 기억이 난다. 노숙자 폭행, 집단 싸움, 차량 절도, 주택 침입…. 밀키바에서 우유를 마시는 영화를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보지 않겠습니다. 선생님은 반성문 때문에 더 화가 난 건지 졸업식 날까지 날 혼냈다. 선생님이 내게 선물한 루도비코 갱생 프로그램이었다.

내 학창 시절은 벌새보다 시계태엽 오렌지에 가깝다. 건대역 뒷골목에서 두 번째 담배에 불을 붙이며 생각했다. 그때 담배가 있었더라면 학창 시절을 더 잘 보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검은색 CDP, 빨간색 넥타이, 섹스리스 선생님, 엄마의 도시락, 생각하기 싫은 것들, 말하기 싫은 것들. 어쨌든 아직까지 학교에 남아있다. 그래서 별로 할 말이 없다.

🐚 까마귀가 추천하는 오늘의 영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