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고등학교 친구들과의 추억입니다. 저는 평일에는 열두 시까지, 주말에는 다섯 시까지 자율 학습을 시켰던 기숙형 고등학교를 다녔어요. 하루 종일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공부를 하는 것이 정말 고역이었는데요. 짬(?)이 어느 정도 찬 고등학교 2학년부터 저와 친구들은 야간 자율 학습 시간과 주말 자습 시간에 학교 밖으로 튀어나가 놀곤 했었습니다.

 

 특히 주말 자습은 일탈을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환경이었는데요. 오전 자습 시간에는 꾸벅꾸벅 졸고, 공부하는 것을 반복하다가 점심을 먹은 후에는 학원에 가는 척 자연스럽게 교문 밖으로 나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교무실 문에 혹시나 담임 선생님이 나오시진 않는지 살펴 본 다음 재빠르게 운동장으로 뛰었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게 그려지네요.

 

 학교 밖으로 나온 저와 제 친구들은 하염없이 걸어 근처의 신세계 백화점에 가는 것을 좋아했는데요. 백화점 안에는 카페도 있고, 서점도 있고, 영화관도 있어 한 공간 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화기애애한 커플들과 가족들 사이에서 저와 친구들은 눈에 확 띄었었어요. 학교에서 입던 회색 체육복을 나란히 입고, 삼선 슬리퍼를 질질 끌고 다녔기 때문입니다. 든든한(?) 체격에 회색 체육복을 입은 모습이 꼭 비둘기 같아 백화점 안에서 같은 체육복을 입고 있는 동창들을 보면 ‘어, 저기 비둘기 또 있다’ 하고 수군거리기도 했지요.

 

 저는 이번 주에 8개월 간의 인턴 생활을 마치고 고향인 부산으로 돌아왔는데요. 답답한 마음으로 사무실에 앉아 있을 때, 스릴 있게 자습실에서 도망쳐 백화점으로 걸어갔던 친구들과의 추억을 곱씹곤 했습니다. 이제 가게에 들어가 아이쇼핑을 하는 것보다는 등산 후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 좋고, 가지고 있던 회색 체육복도 헤져 다 버려 버렸지만 친구들과의 추억은 제 머릿속에 그대로 남아 있어 힘든 날들을 버틸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부산에 있는 동안 백화점에 가게 되면 비둘기 무리가 있는지 유심히 살펴볼 것 같습니다. 자신들만의 추억을 쌓고 있는 비둘기 무리를 발견하면 꼭 다가가 맛있는 것을 사 주고 싶어요. 요즘(?) 친구들에게는 약간 오지라퍼나 꼰대의 행동 양식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후배 비둘기를 향한 선배 비둘기로서의 호의로 받아들여 줬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은 힘들 때마다 생각나는 과거의 기억이 있으신가요? 어떤 장소와 얽힌 기억으로 하루를 살아갈 기운을 내시나요? 아래 피드백 버튼을 클릭해 부녀자들에게 알려 주세요. 그럼 다음 주에 만나요.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