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녀자들 in 섬 (2)

2021. 3. 9.

💌 부녀자들 in 섬 (2)

이 메일이 잘 안보이시나요?

in 섬

레인입니다.

지난 호는 재미있게 읽으셨나요?

같은 주제를 이어 "섬"에 대한 이야기를 여러분들께 전해드려요.

까마귀와 트윙클의 글도 즐겁게 읽어주세요.

TODAY'S PREVIEW 💭

하나, <반짝이는 구석>

: 섬, 고립된 그러나 아주 요망진

둘, <시네마리아> : 섬과 영화

"K선배가 남긴 99달러짜리 블루레이에 관하여"

섬, 고립된 그러나 아주 요망진

by. 트윙클🌱

여러분은 ‘섬’ 하면 어떤 이미지가 가장 먼저 떠오르시나요? 저는 외로이 둥둥 떠다니는 섬의 쓸쓸한 이미지를 먼저 떠올리곤 했는데요, 그러나 최근에 읽은 두 책을 통해 조금은 다른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그 두 책을 소개해드리며 여러분과 감상을 나눠보려고 해요😇

☝첫 번째 책, 「복자에게」는 냉정하고도 옹골찬 고고리섬에서 만난 두 친구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책에서 섬은 누군가에겐 유배지로,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옹골찬 삶의 터전으로 여기지곤 합니다. 저는 이렇게 상반되는 삶의 방식을 가진 작중 인물들이 연대하는 모습을 인상깊게 읽었답니다.

✌두 번째 책, 「일의 기쁨과 슬픔」에서 제가 발견한 섬은 각 단편 속 주인공들과, 그들과 유사한 삶을 사는 바로 우리들이었습니다. 우리 대부분은 도시에서 서로 부대끼며 살고 있지만 동시에 둥둥 떠다니는 섬처럼 혼자 삶을 이겨내고 있지요. 그러한 이중성을 생생하게 꼬집어내는 장류진 작가님의 문체를 읽고있자면 마치 답답한 도시에서 벗어나 휴가를 나온듯 한 기분이 들기도 하네요.🌴

나는 한 계절 몇 달 만에 그렇게 멀어져버린 그곳에 대해 슬픔을 느꼈다가 따귀를 갈기듯 불어오는 바닷바람에 이를 꽉 물고 그런 마음을 내리누렀다. 그리고 복자처럼 바닷바람을 정면으로 맞으며 꼿꼿이 서 있으려고 노력했다. 도시의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몸 자체를 쥐고 흔드는 바람의 세기에 적응하고 싶었다.

- 복자에게, 중

가족의 비극으로 고고리섬에서 일하는 고모에게 맡겨진 주인공 이영초롱은 어느 날 또래 여자아이 ‘복자’를 만난다. 둘은 고립된 섬에서 서로의 버팀목이 되지만 어른들 사이의 갈등에 떠밀려 서먹한 사이가 되고 만다. 오랜 시간이 흘러 서울에서 판사가 된 이영초롱이 제주의 법원으로 오게 되면서 그곳에서 불의와 싸우고 있던 복자를 다시 만나게 된다. 섬에서 나고 자란 복자와 섬으로 ‘유배’를 다녀온 영초롱의 각자 다른 삶,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 내는 연대가 궁금하다면 책을 펼쳐보자.

더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다면 👈

굴욕감에 침잠된 채로 밤을 지새웠고, 이미 나라는 사람은 없어져버린 게 아닐까, 하는 마음이 되었다고. 그런데도 어김없이 날은 밝았고 여전히 자신이 세계 속에 존재하며 출근도 해야 한다는 사실을 마주해야 했다.

- 일의 기쁨과 슬픔, 중

그리 친하지 않은 회사 동료와의 식사자리에서 ‘특’에비동을 시키는 언니, 상사에게 밉보여 일년치의 월급을 포인트로 받게 된 여자, 큰 냉장고가 한가운데 놓인 다섯평짜리 반지하에 사는 남자. 장류진의 소설 속 인물들은 유별난, 그러나 도시에 사는 현대인이라면 공감할 만한 인물들이다. 그들은 주로 ‘젊은 직장인’으로서 각자만의 섬에 고립된 동시에 복잡한 세계 속에 존재한다. 어떻게든 벼텨가는 우리의 이야기가 바로 이곳에 있다.

더 궁금하다면👈

🌱 오늘 소개해드린 두 책 어떠셨나요? 떠오르는 이야기나 감상이 있다면 오늘 레터 하단의 피드백 페이지를 통해 나누어주세요. 저 트윙클은 물론, 다른 구독자분들도 분명 당신의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을테니까요. 😜

<시네마리아> _ 까마귀 🐚

섬과 영화

K가 절벽에서 발을 헛디뎌 바다에 빠져 죽었다. 선배가 제주도로 떠난 지 3개월 만에 처음으로 전해 들은 소식이다. 공항으로 향하는 내내 P는 울음을 멈추지 않았고 J는 말없이 창밖만 내다봤다. 나는 선배를 마지막으로 봤던 날을 떠올리고 있었다. 선배가 석 달 전쯤 대뜸 나를 찾아와 커다란 상자를 내밀었다. 몇 시간 후면 자신은 이제 서울에 없을 것이며, 자신이 돌아올 때까지 물건을 맡아 달라고 했다. 선배는 떠나는 사람이라고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짐이 단출했다. 작은 크로스백 하나만 메고 있었는데, 열어보지 않아도 담배와 라이터 이상 들어있지 않을 거란 걸 예상할 수 있었다. 내가 어리벙벙하게 서 있는 사이 선배는 내 어깨를 몇 번 두드리고는 택시에 올랐다. 선배의 소식을 듣고 나서야 열어본 상자엔 선배와 함께 봤던 영화의 블루레이와 피규어가 들어 있었다. 난 선배가 쪽지라도 남기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에 블루레이를 거꾸로 뒤집어도 보고 피규어의 목을 열어 보기도 했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99달러짜리다. 잃어버리지 마라. 선배가 내게 남긴 말은 상자 안쪽에 적힌 이 두 문장이 전부였다.

비행기에 내려서도 P는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P가 실신하기 직전에야 우리는 선배가 머물렀던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할 수 있었다. 방에서 어렴풋이 선배의 체취가 나는 것 같기도 했다. 늦게 도착한 우리를 위해 게스트하우스 사장님이 옆 가게에서 밥을 배달 시켜 주셨다. 상보를 치우자 회덮밥이 놓여있었고, P는 회를 보자마자 헛구역질을 하기 시작했다. 오늘 앞바다에서 갓 잡은 회라는 문구가 전단지에 적혀 있었다. P의 눈에 들어가기 전에 J가 먼저 전단지를 가렸다. 밥상을 옆으로 치워두고 셋이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아침이 되어서 절벽으로 향하기로 했다. 밖으로 나오자 눈이 소복하게 쌓여 있었다. 입에 담배를 물고 주머니를 더듬거리는 내게 J가 라이터를 건넸다. 좀 잤니. J의 물음에 고개를 저었다. 너는. 라이터를 되돌려주며 물었다. 조금. J가 대답을 하며 운전석 차 문을 열었다. 눈 때문에 차로 10분이면 도착할 거리를 20분 넘게 한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섬의 끝에는 분명히 바다가 있는데, 끊이지 않는 눈길밖에 보이지 않았다. 영화에서도 본 적 없는 눈보라가 불었다. 눈이 그칠 때까지 갓길에 차를 세워두고 잠깐 잠을 청하기로 했다.

절벽에 서 있는 선배가 보였다. 손에 들려 있는 블루레이를 흔들며 선배를 큰소리로 불렀다. 선배가 대답 없이 한참 동안 나를 바라봤다. 그러고는 다이빙 선수처럼 멋진 포즈로 바다에 뛰어들었다. 선배와 함께 봤던 영화의 피규어들이 선배를 따라 차례대로 절벽에서 뛰어내렸다. 선배가 영화 한공주의 마지막 장면처럼 길고 긴 수영을 선두에서 선보였다.

첨벙거리는 소리가 흐느끼는 소리로 변하자 꿈이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P가 차에서 내려 울고 있었다. P를 따라 내렸다. 눈보라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그치었다. 커다란 눈 뭉치를 만들어 P에게 던졌다. 그만 좀 울어. 화가 난 P가 더 큰 눈 뭉치를 만들어 내게 던졌다. 우리는 한참이나 눈 뭉치를 주고받았다. 우리 소리에 깬 J가 합류했다. 손에 감각이 사라질 때까지 눈싸움했다. 운전을 할 수 없을 만큼 눈이 쌓여 결국 차를 두고 숙소로 향했다. 너희 개들의 섬 봤어? 걸으며 물었다. 둘 다 고개를 저었다. 나 그거 블루레이 가져왔는데. 99달러짜리. 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추워서 친구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팔짱을 꼈다. 눈밭에 엉킨 셋의 발자국이 넷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날 우리는 긴긴 눈밭을 걷고 또 걸었다.

🐚 까마귀가 추천하는 오늘의 영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