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녀자들 in 첫공간 (2)

2021. 2. 24.

💌부녀자들 in 첫공간 (2)

in 첫 공간

여러분, 안녕하세요! 지난 한 주 잘 보내셨는지요. 하이바💨 입니다. 요즘 날씨가 굉장히 따뜻해져서 기분 좋은 나날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아직 마스크를 벗고 친구들과 한강으로 소풍을 갈 수는 없지만 말이에요. 부녀자들 구독자분들 모두 안전하고 건강히 지내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따뜻하고 포근한 수요일, '첫 공간'에 대한 하이바와 까마귀의 글로 시작해 보세요. 🍀

💭오늘의 공간 미리보기

하나, <스피릿만큼은 제법 장인급> : 첫 서울 살이, 그런데 이제 인턴을 곁들인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는 법. 새로움은 시간이 지나면 기억과 추억으로 변합니다."

둘, <시네마리아> : 시민 케인에 관한 짧은 글

"당신은 첫 공간에 누굴 두고 왔나요."

하이바 💨 의 <스피릿만큼은 제법 장인급> : 첫 서울 살이, 그런데 이제 인턴을 곁들인

(왼쪽: 하이바의 새로운 일자리 / 오른쪽: 하이바의 새로운 보금자리)

세상에서 가장 듣기 싫은 소리가 뭐냐고 묻는다면 단숨에 ‘아이폰 알람 소리’라고 대답하겠습니다. 띠디디딕. 띠디디딕. 하고 좁은 방안에서 울려 퍼지는 차갑고 딱딱한. 소리라고 말하기에도 짜증 나는 소음 말이에요. 그렇게 그 소리가 듣기 싫으면 알람 소리를 바꿔 보라는 권유도 여러 차례 들었지만, 몸에 익숙해진 탓인지 다른 소리를 들으면 쉽게 일어날 수가 없더라고요. 원래 몸에 좋은 것이 쓰다고, 잠에서 깨기 위해서는 짜증 나는 소리를 감수해야 하는 건가 봅니다. (전혀 말도 안 되는 비유 죄송합니다)

작년 가을과 겨울에는 주로 열 시쯤 알람 소리를 듣고 일어났습니다. 게으른 성정과 온라인 수업이 합쳐져 탄생한 기상 시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얼떨결에(?) 인턴십 프로그램에 합격하게 된 후, 1월부터 출근을 시작한 저는 여섯 시 삼십 분에 첫 알람 소리를 듣고 있어요. 물론 그 시간에 멋지게 벌떡 일어나 운동복으로 휙휙 갈아입고 달리기를 하러 가는... 것은 아닙니다. ‘알람 소리를 듣는다’와 ‘자리에서 일어난다’ 사이의 간격을 좁힐 수는 없는 걸까요.

이사 첫날 마트에서 장을 보다가 갑자기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부산에서 기차를 타고 올라와 용달 아저씨와 함께 짐을 옮기고, 차가운 방바닥에 앉아 짐 정리를 하고, 짜장면을 시켜 먹다 물을 사 오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아 싱크대에서 아리수를 마신 날입니다. 부모님 곁을 떠나 다시 혼자 지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는지, 처음 들어 보는 이름을 가진 지하철역 근처에서 반년을 넘게 살아야 한다는 막막함 때문이었는지, 다음날 첫 출근이 두려웠기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한바탕 울고 나니 실감이 났습니다. 눈물을 닦은 다음에는 언제 울었냐는 듯한 표정으로 장을 마저 봐야 한다는 것을요. 메모장을 뒤적여 적어 둔 도어락 비밀번호를 찾으며 새로운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도, 그리고 반년 후면 그곳이 저의 옛집이 될 것이라는 것도 말이죠.

제가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사무실 또한 나중에는 ‘예전 직장’이라는 이름으로 불릴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 아프네요. 드문드문 일정이 적혀 있는 캘린더, 커피값을 아끼기 위해 타 먹는 카누 봉지들, 제법 웃긴 문구가 적혀져 있는 머그컵을 보면 저는 이곳에 아주 뿌리를 내릴 작정처럼 보이는데 말입니다. 지금 직장이 ‘예전에 내가 인턴 하던 곳 있잖아 왜’라는 이름으로 불릴 때쯤, 저는 어떤 공간에서 또다른 처음을 시작하고 있을까요. 그때도 한 번도 가 보지 못한 마트에서 익숙한 물건들을 고르며 울게 될까요?

첫 공간의 낯섦과 두려움 때문에 눈물이 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걸지도 몰라요. 실컷 운 뒤에는 씩씩하게 낯선 보금자리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 지금의 새로움은 시간이 지나면 기억과 추억으로 변한다는 것을 기억합시다. 그리고 내일 첫 알람 소리를 듣자마자 박력 있게 일어나 보는 거예요. 잠옷을 운동복으로 갈아입는 것까지 성공한다면 스스로에게 감탄 발사.

네? 갑자기 얘기가 왜 거기로 새냐고요? 은근슬쩍 운동 친구 구하지 말라고요? 역시 한국 사람 눈치 빠른 건 알아줘야 돼.

<시네마리아> _ 까마귀 🐚

시민 케인에 관한 짧은 글

처음이 있다면 끝도 존재한다. 괄호를 여는 순간 괄호를 닫아야 한다는 의무가 생기는 것처럼 우리는 언제나 끝맺음을 생각하며 살아가야 한다. 20살이 되기 1분 전에 한 생각이다. 사람들은 한창 새해를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별 볼일 없이 끼여 앉아 사람들의 카운트다운을 들었다. 10, 9, 8, 7… 19살이 끝나면 세상이 무너질지도 모른다. 6, 5, 4, 3, 2… 괄호를 닫으며 눈을 감았다. 불지옥을 생각하며 눈을 뜨니 20대라는 새로운 괄호가 막 열려 있었다. 바닷가에서는 끝없는 폭죽이 피어났다. 내 세금이 날아간다. 옆 아저씨가 떠들어댔다. 나는 로맨틱한 생각을 하기로 했다. 퐁네프의 연인들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그 후로 병에 걸린 것처럼 불꽃놀이를 할 때면 레오 까락스가 떠오른다. 대학에 들어가서 별 관측 동아리에 가입했던 적이 있다. 시간을 놓치면 보이지 않는 별자리들이 많았고 우리는 아쉬운 마음에 밤하늘을 향해 폭죽을 터트렸다. 그때 마침 S가 옆에 있었고 나는 이것저것에 취해 S를 집으로 초대했다. S는 좁은 침대에 어정쩡하게 앉아 퐁네프의 연인들을 봤고 나는 기대 누워 S의 어깨를 봤다. 그날 밤 S는 나의 펑펑 터지는 첫사랑이 되었다.

S와 헤어졌던 날 밤에도 나는 꾸역꾸역 극장을 찾았다. 우리의 괄호를 열 줄만 알았지 닫아야 할 줄은 몰랐기에, 나는 도무지 끝내는 방법을 알 수가 없었다. 걸려있는 영화 중에 그나마 덜 사랑스러워 보이는 영화를 고르기 위해 애썼다. 재상영 중인 시민 케인이 좋은 선택이라고 자부했지만 나는 사랑 외에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었다. 로즈버드. 결국 케인이 죽기 전에 외친 건 첫사랑의 이름이구나. 영화를 중반부쯤 봤을 때 깨달았다. S에게 달려가야겠다. 2시간의 러닝타임이 끝나면 S가 먼저 괄호를 닫아버릴 것만 같았다. 뛰어나갔지만 S는 이미 떠난 후였다. 기회를 놓친 나는 더럽게 늙어 S의 이름을 외치며 죽는 불행한 최후를 맞이한다. S가 떠난 후로 매일 반추한 문장이다.

S의 생일에 불행한 최후를 떠올리며 시민 케인을 틀었다. 영화 후반부에 이르러서야 깨달았다. 로즈버드는 첫사랑의 이름이 아니라 시민 케인이 고향을 그리워하며 남긴 말이었구나. 나는 첫사랑의 이름을 외치며 죽는 더러운 최후가 아니라 사랑했던 첫 공간을 외치며 지는 아름다운 죽음을 맞이하는구나. 사랑하는 존재가 창 너머로 보이고 하얀 눈밭에서 눈썰매를 타는 곳. 영화를 끄고 나의 로즈버드에 대해 생각했다. 높은 언덕을 걸어 올라 주머니를 더듬거려 폭죽에 불을 붙이고, 친구들은 바람 하나에도 웃음을 멈추지 않는다. 싸구려 폭죽이 하늘을 향해 큰소리를 내며 날아가자, 소리에 맞춰 심장이 뛰는 것 같기도 하다. 알 수 없게 쓸쓸해진 마음에 고개를 돌리면...... 사실 나는 알고 있다.

결국 나의 로즈버드는.... ( ).

모든 첫 공간은 서툴다. 그런데도 우리가 처음을 잊지 못하는 건 나의 불완전함을 함께 기억해줄 누군가가 있어서 그런 거 아닐까. 어쨌거나 괄호는 닫혔다.

🐚 까마귀가 추천하는 오늘의 영화 🐚